박지민은 한때 마음의 결이 맞는 상대가 있다는 것 자체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이 내꺼같지? 1년만 기다려봐. 세상이... 날 버린 것 같다? 아주 중요하면서도, 소모적인,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 지금 내가 가진 것 중에 유효기간 가장 짧은 거. 그게 뭐지. 청춘? 그래, 젊음이니 뭐니 하는 것들. 지민은 그걸 낭비하는 것 같았다. 춤을 ...
"형은 연애 안 해요?" "연애가 밥 먹여주진 않아." "미래에 밥 해먹을 의무는 생기잖아요." 하아... 너 도대체 이런 건 왜 묻냐? 형은 침대에 누워 있다가 불만스럽게 나를 내려다 봤다. 분명 이 방 주인은 난데 주인 자리는 없고 침입자가 떡하니 온 방 안을 차지해선 여긴 감놔라 저긴 배놔라. 형 때문에 방에 소나무향 방향제도 놓고 과자도 갖추고, 형...
“나 그 형한테 아무 생각 없었는데.” “…어어.” “근데… 그 형 우는 거 보고 달라졌어.” “뭐?” “그 형이랑 섹스하고 싶어.” 믿던 자식은 아니었지만 사람 뒤통수 때리는 말을 정말 대수롭지도 않게 뱉더라. 콘크리트 부수는 것 마냥 쾅, 쾅, 쾅, 심장이 뛰어댔다. 그 여파로 뿌옇게 일은 먼지 때문에 숨이 막히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지민을 채운 감...
옛날에 이런 동화가 하나 있었지. 이솝우화였던가. 그건 잘 모르겠고. 어릴적에, 민윤기를 알기도 전에 엄마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다. 머리 잘 돌아가는 여우 하나가 원숭이한테 꽃신을 선물해 줬다는 것으로 시작되는. 공짜로 꽃신을 받은 원숭이는 공짜와 호의에 눈이 멀어 잘 신겠다며 신발을 신기 시작했고, 나는 둘이 그렇게 잘 지낼 줄 알았다. 그러나 꽃신 때문에...
예상은, 특히나 민윤기를 향한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걔가 했던, 늘 하는 얘기들. 존나 쎈 힙스터로써의 자아를 표출하기 위해 떠들었던 농구부 훈훈한 선배로써의 자신의 일화, 빡빡이 고딩 시절 17:1로 싸워서 이긴 전설 아닌 레전드, 랩 동아리를 탈퇴한 후 빽 없이 디스랩으로 장기자랑 1등 먹은 썰 등등등... 그걸 술자리에서 언플했다. 개총 종총 ...
공수레 공수거. 모두들 태어날 땐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고 태어난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그래서 처음엔 다들 챙기는 법이라는 걸 잘 모른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런 무지는 어리다는 허울 아래 용서받기 십상이었는데 아마 그게 나를 망친 것 같다. 나는 물건을 늘 잃어버렸다. 난 뭐든 손에 쥐는 법을 몰랐고, 우리 엄마는 잊어버리는 법을 몰랐다. 내...
그런 날이 있다. 나를 혹사시키고만 싶은 날이. 온 몸이 민윤기 생각으로 젖은 솜이 되었다고 느껴지면 커피를 왕창 마시고 달리기를 했다. 그렇게 기진맥진해서 내가 숨을 쉬는지 숨이 나를 쉬는지 헷갈리는 지점에 다다르면, 머리가 꼭 몽롱해지면서 땅이 뿌리째 흔들리는 기분이 되는데... 지금 심장이 뛰는 건 커피 때문이고 몸에서 수분기가 빠지고 나면 비로소 나...
지민은 배고프면 밥 먹고 잠오면 자야되는 사람이었다. 뭐가 갖고 싶어지면? 가져야겠지 뭐. 아직 막 미치도록 뭐가 갖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서 잘 모르겠다. 운동에 미친놈처럼 각종 동아리며 대회를 휩쓸어 머리에 든 건 없고 몸만 튼튼한 아이 컨셉을 잡은 지민은 모든 이의 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설사 다리를 벌린다 하더라도 주변인들은 하나...
“오늘 그 새끼 죽일 거예요. 술 먹기로 했어요.” 그 전에 손님이 먼저 알코올 중독으로 죽지 않을까요? 지민은 처음 보는 알바생 팔을 버스 손잡이 잡듯 필사적으로 부여잡았다. 그 악력만으로도 아, 이 사람 지옥의 통학러구나 느낄 수 있을 만큼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악력에 제 팔의 자유를 포기한 윤기는 지민의 건너편 의자에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지민이 윤...
내가 캔디가 되는 건 그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씻고 옷 입으면 변신 끝! 이거면 참 좋겠지만. 잦은 탈색으로 중력을 거스르게 되어버린 머리칼을 후드 속에 꽁꽁 숨긴 다음, 까만 벤을 타고서도 한시간을 달려서야 비로소 준비의 준비가 끝나는거다. 샵에 가야 뭐가 되니까. 벌써 지친다. 집에 가고 싶다.음. 샵 의자에 앉아서는 장장 삼십분짜리 메이크업과 헤어를...
이건 그냥 일반 사무용 노트다. 검은색의 인조가죽 케이스가 씌워져있고, 금빛 스프링이 끼워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표지 정 중앙에 금박의 궁서체로 정갈하게 박힌 `가계부` 세 글자. 그러나 내부엔 빼곡히 적혀 있을 글자들에 대해 짐작가는 바와 다르게, `오늘 저녁 무조건 치킨` `국민은행가기` 와 같은 소소한 메모가 불규칙하게 둥둥. 주인을 닮아 마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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