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기한이란 게 존재하지 않을 순 없을까? 나는 번데기 통조림에다 대고 물었다. 그딴 벌레를 왜 먹냐는 민윤기에 맞서 악을 쓰고서야 겨우 산 통조림이지만, 쓰레기통 신세를 피하진 못했다. 왜냐면, 약이 잔뜩 오른 민윤기가 나비 다큐를 틀어주는 바람에 나도 못 먹게 되었거든. 나쁜 추억은 미화되어 좋은 추억이 되고. 좋은 추억은 돌아올 때 아프다. 그 뒤로...
1 위장 취업에 성공한 야망가 뽀르가. 그는 조국에서 제일가는 구두 공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계획에도 없던 한국으로 온 이유는 간단했다. 조국은 작고 장사는 시원찮아 돈벌이가 심심하니 한번 큰 판에 뛰어들까 싶어 한국으로 온 것이다. 당신이 마약… 운반을 한다고요? 처음 온 한국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은 마치 혼자 색상대조를 해놓은 듯 ...
<1> 식당은 옅은 오렌지빛이 출렁이는 작은 어항 같았다. 연기나, 말소리나, 분위기의 포말 틈에서 섞이는 사람들. 연기가 대신 하얗게 피어올랐다. 내부나 간판은 `양꼬치`라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그대로. 빨간빛의 간판, 금박 한자. 아무래도 좀 강렬하다. 저도 처음엔 부담스러웠으니까. 이 자리가 부담스럽듯. 주말 저녁이라 자리는 만석이고, 겨...
누군가에게도 통조림 캔 같은 존재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오래 버틸 것 같았지만 결국 상하고 마는 것. 유통기한의 불문율. 깡통을 두른 우리 사랑은 썩은 내가 났다. 물을 것도 없었다. 그냥, 기한이 다 된 것일 뿐. 지민은, 영원하리라 생각했던 깡통 인간의 속이 썩어 문드러졌던 것을 막 목격했다. 그래. 맘을 놓아선 안 됐다. 목줄을 느슨하게 풀어주거나...
#1밥을 먹다 말고 윤기는 벌떡 일어섰다. 균형이 맞지 않아 덜컹거리는 개다리 소반이 그의 꼴과 사뭇 비슷하다고 지민은 생각한다. 찬이 얼마 없어 비참하기까지 한 밥상이라 엎어져도 상관은 없는지 지민은 상이 흔들려도 손만 뗀 체 멀뚱히 그 꼴을 바라본다. 그 표정에서는 이제 경외심 비슷한 경악이 번지고 있었다. 뭐에 홀린 사람처럼, 윤기는 제 다리통보다 두...
16 20 박지민은 그런 애였다. 자기를 따라다니는 애들이 있으면 근처에 보이는 즉석 사진기 속으로 쏙 들어가서는 예쁜 척 귀여운 척, 애교가 잔뜩 묻혀진 사진을 뽑아와선 한장씩 나눠주는 애. 요즘은 1+1+1+1이라 한장 값을 내면 4장이 나오기 마련이었는데, 그럼 한장은 꼭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고 남은 세장을 차례차례 나눠줬더랬다. 한 사진당 네컷이니까...
화장기 가득한 얼굴이 부끄러워서 급히 모자를 썼다. 누가 알아볼까 봐서가 아니고, 진짜로 순전히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모텔을, 그러니까 임시로 잡을 숙소를 알아보러 가기 전에, 매니저가 그렇게 물었다. 먹고 싶은 건 없냐? 하고. 존심 상하게 일말의 동정심 그득한 말투로다가. 문득 화를 내더라도 야박하게 굴 양반은 아니었지만, 그냥 순순히 대답을 고르려 애...
차를 골라잡고 보니 문짝이 없었고 대신 열쇠가 날 좀 돌려달란 듯이 꽂혀 있었다. 덤으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 그걸 억지로 토하듯 뱉어내야 했다. 내 시야 안에는 고작 엷은 가로등 빛에 벌벌 떨리는 허연 손과, 그 손이 꽉 쥐고있는 차키만이 있었다. 제 앞에서 번뜩이는 죽음의 칼날 앞에 시야가 좁아졌으며, 시동을 거는 행위에만 집중함에 귀가 먹었다는 것...
온통 하얗다. 분명히 슈퍼에 가서 뭘 좀 사다 오는 길이였다는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어째 떠오르는 게 없다. 밤공기가 찬 까닭인지 나쁜 일이라도 날 것처럼 등골이 오싹했고, 그다음엔… 눈을 떴는데 제 앞이 온통 하얬다. 귀찮아서 몇 끼 안 챙겨 먹었다고 사람이 이렇게 픽픽 쓰러지구 그러나. 천장이 하얀 동네 병원이길 바라며 몸을 일으키는데 병원...
"지민아, 오늘 뭐해?" "저 오늘.. 훈련 끝나고 집에 가야죠. 금요일이니까." "내가 심심하게는 못 살거든. 나랑 놀러갈래?" 왠 밤에 기숙사방 앞까지 찾아와선. 그 노골적이면서도 고전적인 방식이 우습긴 해도 내심 응원하고 싶은 심정이다. 윤기가 땀에 젖은 지민의 팔을 잡아끌었다. 곧 지민이 그걸 뿌리쳤지만. "지금 아직 어리다고 그딴 멘트 쓰는 것 봐...
01 과거 타임 패트롤 25기 수석 졸업생에 빛나는 미스터 침침은 오늘도 카우치 포테이토 신세였다. 그는 잉여 인력의 증가로 인한 작은 피해자이다. 그도 그럴것이 정부에선 예민한 유리 멘탈과 풍부한 감정을 지닌 노동 인력보다는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애완 사냥개들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실수를 연발하는 패트롤 요원들을 대체할 것을 찾다 구닥다리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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